우리밀, 하쿠나 마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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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9.0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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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일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밀연구팀장
박태일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밀연구팀장

무더위를 피해 한창 인기리에 상영 중인 영화 ‘라이온 킹’을 봤다. 내용은 같은데 처음과 다름없이 감동적이고 여전히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주제인‘새로운 세상, 너의 시대가 올 것이다’와 같이 자식들에게 꿈꾸는 미래에 대한 대리만족인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삶에 대한 긍정적인 기운이 경쾌한 뮤지컬로 구현돼 영화의 감동을 더해 준다. 특히 ‘하쿠나 마타타’라는 노래가 기억에 남는다. 하쿠나 마타타는 동부 아프리카 스와힐리족 언어로‘문제없다’는 의미로 영화 속에서는 지나간 과거의 근심과 걱정은 잊어버리고 왕의 후계자로서 본래의 자리를 찾아간다는 내용을 가사에 담아 숲속의 모든 동물들이 함께 부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집에 도착한 후에도 영화의 장면들이 계속 떠올랐다. 영화 속 심바의 성장과 삶의 여정이 마치 우리밀을 연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2일 우여곡절 끝에 우리밀 생산부터 소비, 유통에 관한 ‘밀산업육성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우리나라 국민 일인당 연간 밀 소비량은 32.4kg인데 쌀이 61kg이니 하루 세끼 식사 중 한 끼는 밀로 해결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과히 밀은 제2의 주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밀은 연간 평균 400여 만 톤 이상이 수입되는데 이 양은 한 해 평균 국내 쌀 생산량과 맞먹는 양이다. 이 중 절반이 식용인데 국내 밀 자급률은 1% 정도다. 우리밀이 이렇게 된 데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한국전쟁의 폐해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식량을 미국이 Public Law 480의 법안을 만들어 1956년부터 무상원조하기 시작하면서 1968년 100여만 톤까지 늘게 된다. 그 뒤 1984년 정부는 밀 수매제도를 폐지하여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또한 1977년에 농촌진흥청 맥류연구소가 설립되어 맥류 연구가 이뤄졌는데, 1991년에 폐지되어 연구 분야도 축소되어 우리밀은 민간 차원에서 농민들의 힘으로 명맥이 유지돼 왔다.

그런 우리밀이 최근 부활하고 있다. 식량안보적 차원에서 우리밀 생산 기반에 대한 문제의식과 수입 밀 식품 안전성 문제 등이 거론되며 밀의 중요성이 대두됐다. 정부는 밀산업육성법, 농림축산식품부 국산 밀 산업 중장기 육성대책 발표 등 정책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또한 국립식량과학원에서는 밀 연구팀을 신설하며 국내 밀 산업에 일조하기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우리밀의 생산부터 1차 제분, 2차 가공제품 생산, 3차 소비 촉진까지 연계시켜 우리밀의 자급률이 올라가고 건강하게 자라나기를 기원한다.

수입 밀과의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기능성분이 함유된 유색 밀, 알레르기 저감 밀 등 부가가치를 높인 우리밀 품종 연구와 원료곡 안정생산을 위한 최적 재배기술, 수확 후 품질 관리 등에 대한 연구도 수행한다. 빵용 밀, 면용 밀, 과자용 밀 등 용도에 적합한 밀 품종을 개발하며 밀 소비 촉진과 수요자 중심에 중점을 두고 있다. 우리밀 자급을 위한 정부 정책과 연구기관의 노력에 손잡아 줄 마지막 주자는 국민이다. 우리밀에 대해 알고, 먹고, 소비하는 문화가 자연스레 심어져야 한다. 지난 역사 속에 우리밀은 이제 또 다른 시작이다. 새로운 세상, 국산 밀의 시대가 오고 있다. 하쿠나 마타타!

/박태일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밀연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