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밀로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

김규원 기자입력 2023. 12. 13. 10:03
[표지이야기]우리밀 칼국수, 우리밀 빵 만드는 이들이 말하는 ‘우리밀이 좋은 이유’
2023년 12월4일 우리밀을 사용해 칼국수를 만드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 ‘대부면가’의 채만식 대표가 우리밀 바지락 칼국수를 선보이고 있다. 김규원 선임기자

씨알이 굵은 대부도 바지락으로 낸 국물에 삶아먹는 우리밀 칼국수는 매끄럽고도 쫄깃했다. 2023년 12월4일 낮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 ‘대부면가 우리밀 칼국수’ 음식점에서였다. 대부면가는 1992년 대부도에서 ‘우리밀 칼국수’를 가장 먼저 내놓은 음식점이다. 이 대부면가의 채만식 대표는 “우리밀로 만든 칼국수가 맛이 더 구수하고 건강에 좋고 안전하다”고 말했다.

우리밀의 품질과 다양성이 높아져

이 우리밀 칼국수는 원래 채 대표의 어머니 조돈영씨가 처음 시작한 음식이다. 조씨는 1987년 시화호 사업이 착공된 뒤 1988년께 시화방조제 서쪽 끝 방아머리 선착장 부근에 칼국숫집을 처음 열었다. 1992년 조씨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바로 수입밀 대신 ‘우리밀’로 칼국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연극배우 손숙씨가 텔레비전에서 우리밀을 홍보하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30년 넘게 우리밀을 사용하면서 어려움도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앉은키밀(옛 앉은뱅이밀) 등 초기 우리밀이 찰기가 적어 국수가 쉽게 끊어진다는 점이었다. 이것을 개선하려고 감자·고구마 전분, 포도즙, 함초가루를 넣기도 했다. 백강밀, 금강밀 등 찰기가 많은 강력분(굳은밀가루, 빵용) 품종이 나오면서 이 문제가 개선됐다. 특히 2023년부터 사용한 황금알 품종은 글루텐 함량이 10%로 높다. 채 대표는 “원래 황금알은 빵용이지만 칼국수 만들기도 좋고 수입밀과도 경쟁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부도엔 칼국수를 파는 음식점이 160여 곳인데, 대부면가를 포함해 우리밀 칼국수를 파는 곳이 6곳 있다. 채 대표는 우리밀 칼국숫집이나 우리밀 빵집을 더 늘려서 이 거리를 ‘우리밀 특화거리’로 만들 꿈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채 대표는 11월 새로 지은 음식점 건물 2층에 우리밀을 사용하는 빵집도 열었다.

채 대표는 “통밀은 우리밀의 독특한 향이 강한데, 젊은이들은 그 향을 국수가 안 익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과거에 통밀과 백밀을 50%씩 섞어 쓰다가 현재는 백밀만 쓴다. 그러나 통밀을 써야 우리밀의 맛과 향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조만간 다시 통밀을 섞어보려 한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콩플레’는 우리밀만 사용하는 빵집이다. 오해원 대표가 주로 사용하는 우리밀은 금강밀, 조경밀, 앉은키밀, 곡우호밀 등 네 가지이며, 토종 밀인 ‘참밀’도 조금 사용한다. 이 가운데 곡우호밀과 참밀은 박력분(무른밀가루, 과자용)이고, 앉은키밀은 중력분(국수용)과 박력분의 중간이고, 금강밀과 조경밀은 강력분과 중력분의 중간이다.

우리밀로 빵을 만들면 손님들 반응은 두 가지다. 오 대표는 “원래 우리밀을 쓰는 게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고, 거꾸로 우리밀로도 빵을 만들 수 있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오 대표는 우리밀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밀 중에서도 친환경(무농약 또는 유기농) 우리밀을 쓰고 이스트 대신 천연발효종을 쓴다. 오 대표는 “친환경 농업으로 키운 밀이 풍미가 좋고, 이스트 대신 밀에 든 유익균을 활용한다. 우리밀은 천연발효가 잘된다”고 말했다.

2023년 12월4일 우리밀을 사용하는 빵집인 서울 종로구 혜화동 ‘콩플레’에서 오해원 대표가 빵을 썰고 있다. 김규원 선임기자

“밀의 성질 바꾸는 대신 그 성질 존중해야”

우리밀은 다양성이 부족해서 새 품종 개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예를 들어 해방 이후 개발된 우리밀 품종은 40여 가지, 현재 사용되는 품종은 5가지 안팎인데, 전세계적으로 사용되는 품종은 수천 가지다. 또 우리 밀가루 제품도 대여섯 가지지만, 수입 밀가루 제품은 100여 가지나 된다. 주요 밀 생산국들은 다양한 품종의 밀을 섞어(블렌딩) 필요한 특성을 가진 밀가루로 만들어낸다.

그러나 오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현재 나온 밀 품종으로도 부족하지 않다고 본다. 오 대표는 “품종을 개발하고 밀의 성질을 바꿔서 사람에게 편리하게 하자는 생각이 문제다. 오히려 밀의 성질을 잘 고려해서 빵을 만들면 박력분으로도 부드러운 빵을 만들 수 있다.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밀도 그 성질을 존중하면 좋은 빵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밀은 크게 4가지로 많이 사용된다. 2022년 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식품산업 분야별 원료소비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밀가루 사용량은 장류와 수산가공품(33%)이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라면(27%), 빵(15%), 과자류(11%), 국수(9%) 순서였다. 그러나 우리밀은 아직 어디에 얼마나 사용하는지 통계를 잡지 않는다. 전체 밀에서 우리밀 비율이 1% 정도로 미미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우리밀 사용 비율이 전체 밀과 비슷할 것으로 본다.

우리밀 소비처로 가장 각광받는 분야는 제빵이다. 대표적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인 한살림의 경우 우리밀 가공품이 212가지인데, 이 가운데 빵과 케이크가 101가지로 거의 절반이었다. 2023년 10월23~31일 한살림이 연 ‘우리밀 빵지 순례’ 행사엔 전국에서 54개 빵집이 참여했다. 국내 빵 시장은 2016년 3조6930억원에서 2020년 4조2812억원으로 늘었으며, 2026년엔 4조5384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한살림연합의 이경현 홍보본부장은 “개별 빵집, 생협, 생산자들의 의지적인 우리밀 선택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전국 어느 빵집, 어느 매장을 가도 외국산이 아닌 국산 밀이 주원료가 되도록 국가 차원에서 가격이나 품질 관리 등 관련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밀을 키우는 밭 풍경. 한국우리밀농협

“국숫집에서 우리밀을 쓴다면”

과자 역시 가능성이 큰 분야다. 대표적인 우리밀 가공식품 주식회사인 ‘우리밀’의 경우 밀 제품이 200여 종인데, 70%가량이 과자류다. 과자는 찰기(글루텐)가 적은 밀로 만들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글루텐이 적은 편인 우리밀로 만들기 유리하다. 우리밀주식회사 금가람 기획실장은 “빵은 밀의 글루텐 함량이 높아야 해서 우리밀로 만드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과자는 부풀기나 조직감보단 맛이 더 중요해서 박력분이면 충분했다”고 말했다.

우리밀 소비를 늘리려면 한국인들이 특히 많이 먹는 라면과 국수 쪽에 공급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라면과 국수는 전체 밀 소비의 36%를 넘고, 장류와 수산가공품을 빼면 밀 소비의 절반을 넘는다.

송동흠 우리밀세상을여는사람들 운영위원장은 “우리밀 가운데 중력분의 품질이 좋고, 중력분은 국수를 만들기 좋다. 한국엔 국숫집이 널렸는데 대부분 수입밀을 쓴다. 국숫집에서 우리밀을 쓴다면 우리밀 소비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국수를 우리밀로 만든다면 우리밀이 라면과 빵 시장을 바꾸는 것도 시간문제다”라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김보람 식량산업과장은 “국수·라면 쪽은 가격 경쟁이 치열해서 먼저 고급화가 가능한 빵이나 과자 쪽이 우리밀을 쓰기 좋다. 또 친환경 제품이나 영유아 제품에서도 경쟁력이 있다. 아무래도 기업들이 밀 사용 규모가 크므로 기업들과 협력해서 우리밀 제품을 개발하겠다. 더 다양한 우리밀 제품 유통 경로를 확보하고 급식도 더 늘려보겠다”고 말했다.

우리밀을 이런 가공식품에 사용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가격이다. 보통 수입밀의 2~3배에 이르는 우리밀 가격이 식품업체나 음식점엔 큰 부담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농부들과 우리밀 운동가들은 정부의 직불금 인상을 요구해왔다.

김경아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사무총장은 “우리밀 가격을 낮추기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은 직불금을 올리는 일이다. 현재의 ㏊당 50만원에서 250만원으로 높이면 수입밀과의 가격 차이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2024년 밀 직불금을 현재의 ㏊당 50만원으로 유지하고, 밀을 콩·가루쌀과 이모작하는 경우에만 ㏊당 250만원에서 350만원으로 높일 계획이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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