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정부가 내놓은 ‘2017 중장기 쌀 수급안정 보완대책’엔 구조적인 쌀 공급과잉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내용이 담겼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벼를 가득 실은 적재함이 줄지어 선 충남 우강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의 추곡수매 장면.
정부가 9일 내놓은 ‘중장기 쌀 수급안정 보완대책’은 2015년 11월 발표했던 기존 대책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벼 재배면적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지자체에 공공비축미 물량 배정 시 인센티브를 주는 것과 복지용 쌀 공급가격을 대폭 인하해 수요확대를 유도하겠다는 것 등이 그렇다. 정부 재고미를 줄이기 위해 사료용 쌀 공급을 확대하고, 쌀의 해외원조를 실시하겠다는 방안도 기존 대책에 추가된 내용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한계와 과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배면적 감축 목표 달성 난항=농식품부가 제시한 벼 재배면적 감축이 목표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재정상태가 열악한 지자체들은 사업확대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7243㏊의 감축 목표를 할당받은 전남이 600㏊만 사업대상으로 삼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결국 지자체들이 1일 현재 벼 재배면적 감축을 위해 확보한 예산은 171억원에 불과하다. 농식품부가 올해 벼 재배면적 3만㏊를 줄일 목적으로 생산조정제 도입을 검토하면서 904억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던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적은 액수다.
감축 목표 면적이 3만5000㏊로 늘어나면 산술적으로 1050억원이 필요하다. 필요 예산의 16.2%만이 확보된 것이다. 공공비축미 물량 배정 시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쌀값이 낮은 전남·충남도의 경우 공공비축미 물량을 배정받는 데 적극적이지만, 경기지역 등은 쌀값이 높아 이에 대한 관심이 아주 크지는 않기 때문이다.
결국 추경을 통해 국비를 확보한 후 강력한 생산조정제를 실시해야만 감축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생산된 타작물의 수급문제는=생산조정제건 지자체의 타작물 재배사업이건 이러한 사업들은 필연적으로 콩 같은 타작물의 생산을 늘리게 된다. 타작물 수급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소비확대 없는 생산량 증대는 혼란만 야기한다는 사실은 우리밀 사례에서 이미 입증됐다. 2000년대 중반 6000~8000t에 불과하던 밀 생산량은 2009년을 기점으로 크게 증가해 2010년 3만9000t, 2011년 4만4000t, 2012년 3만7000t에 달했다.
하지만 안정적인 판로 확보 없이 생산만 늘린 결과 재고과잉 문제가 불거졌다. 결국 별도의 예산을 투입해 군 급식에 우리밀 가공제품을 공급하는 등 홍역을 치렀다.
이번 보완대책에서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거의 없다. ‘국내 수급과 연계해 콩 등 잡곡류 저율관세할당(TRQ) 및 정부수매량 조정’ 정도만 있을 뿐이다. 기획재정부가 생산조정제 도입에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가 ‘농식품부가 쌀 대신 생산될 작목을 어떻게 소비하겠다는 대책을 가져오지 않는다’라는 점을 농식품부는 되새겨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복지용 쌀 할인판매, 신변노출 방지 등이 과제=기초생활수급권자에 대한 복지용 쌀 할인율 확대도 과제를 안고 있다. 쌀을 공급받는 수급권자의 신변노출을 어떻게 방지할 것이냐다. 수급권자들은 복지용 쌀이 일반 쌀에 비해 크게 저렴함에도 이를 잘 이용하지 않고 있다. 수급권자의 15%만이 복지용 쌀을 신청해서 공급받고 있을 정도다.
복지용 쌀 포장지에 ‘나라미’라는 표시가 돼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런 표시가 돼 있는 쌀을 받아드는 수급권자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부 나라미에서 도정일자가 오래된 것이 발견되고 있는 점도 수급권자들이 복지용 쌀을 외면하는 이유 중 하나다.
복지용 쌀 공급은 쌀 재고를 처리하는 여러 방안 가운데 처리비용이 10만t당 1233억원으로 가장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사회적으로 복지용 쌀 공급을 늘려야 하는 이유다. 그러려면 배송 시 신변노출 방지 등 수요확대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복지용 쌀이 새 수요를 창출하는 효과는 낮기 때문에 쌀소비 촉진 방안으로서 한계는 분명하다는 지적도 있다.
◆사료용 쌀 사료 가치가 문제=사료용 쌀 공급은 지난해 9만t에서 올해 47만t으로 5배 이상 늘어난다. 우리나라가 해마다 의무수입해야 하는 저율관세할당(TRQ) 물량이 40만8700t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많은 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쌀을 가축사료로 사용하는 데 따른 거부감은 상당 부분 해소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미 지난해부터 사료용으로 공급을 시작했고, 쌀 공급 과잉이 워낙 심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쌀의 사료 가치가 옥수수보다 떨어져 수요확대에 한계가 있다는 점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또한 일반 사료 원료는 벌크 상태로 수입·저장돼 사용이 간편하지만 쌀의 경우 톤백으로 공급돼 이를 트럭에 상하차하는 과정 등이 매우 번거롭다는 문제도 있다.
사료용 쌀이 옥수수에 비해 가격 측면에서 큰 장점이 없다면 올해 사료용 쌀 수요가 대폭 늘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륜 기자 seolyoon@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