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균

세계 녹색혁명가져온 우리 토종 앉은뱅이밀

"달마는 후르츠달마를 낳고 후르츠달마는 농림10호를 낳고 농림10호는 소노라를 낳았다."

마태복음 첫장을 연상케 하는 이 귀절은 밀에 대한 족보이다. 미국 아이오와주 출신의 육종학자 보로그 박사는 멕시코에 있는 국제맥류옥수수연구소의 책임자로 일하면서 '소노라'라는 밀 품종을 개발하였는데 1970년에 그는 이로써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가 개발한 신품종 밀로 1960년대 말 인도와 파키스탄을 기아에서 구출할 수 있었던 녹색혁명을 불러왔다는 공적 때문이었다.

예전의 거의 모든 품종의 밀은 키가 커서 쓰러지기가 일쑤였다. 이 때문에 수확량이 높지 않았다. 그러나 보로그 박사가 개발한 밀 소노라는 키가 작아 거센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았다. 수확량은 급증하였고 파키스탄과 멕시코는 이로 인해 일시적이기는 하였지만 밀을 수출하기까지 하였다.

키가 작은 유전자를 지닌 이 밀 품종의 먼 조상이 바로 우리의 앉은뱅이밀이었다는 사실을 알면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농학자 안완식 박사는 앉은뱅이밀의 직계 후손이 아직 살아있음을 밝혀냈다. 그의 저서 <우리가 지켜야 할 우리종자>에서 그 순간을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다.

"재배지를 확인하기 위해 내가 그곳을 찾은 것은 밀이 한창 필 무렵인 95년 4월 25일. 남해대교를 건너 500~600 미터쯤 남해섬을 돌아 도로를 끼고 왼쪽으로 돌아서자 아래쪽으로 논과 밭이 온통 마늘로 덮여있었다. 그런데 오른쪽 언덕에 막 이삭이 패고 있는 작은 밀밭 한 뙈기가 보이는게 아닌가! 김재명씨(밀밭 주인)를 찾기도 전에 무언가에 끌린 듯 차를 세우고 밀밭을 찾아 기어올라갔다. '과연 이것이 내가 찾던 앉은뱅이밀이었구나!' 하는 반가움에 전율을 느꼈다."

소득이 낮아 외면당하던 앉은뱅이밀이 한 뜻있는 농부에 의해 대를 이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키가 작다는 뜻의 '앉은뱅이'라 이름붙은 이 밀은 우리나라 중, 남부 지역에서 널리 재배되던 품종이었다. 이 난쟁이 밀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임진왜란 때로 추정되지만 일제침략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기록이 있다. 일제는 한국의 농업에 관한 제반 사항을 조사하기 위해 1904~1905년에 한국토지농산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이 때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작물의 재래종을 가져갔다. 이 때의 기록에 '까락이 있고 키가 작은 밀'이라고 표현한 앉은뱅이밀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보다 육종기술이 한 발 앞섰던 일본은 앉은뱅이밀을 계통선발하였고 1914년에 키가 작다는 뜻의 달마(達磨)가 탄생하였다. 달마는 미국계 키가 큰 밀인 후르츠를 만나 후르츠달마를 낳았으며 후르츠달마는 다시 미국에서 많이 재배하던 겨울밀인 터키레드를 만나 1936년에 키가 작지만 이삭이 크고 줄기가 굵은 농림10호를 낳은 것이다.

1945년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진주한 미군의 농업고문인 사몬이라는 사람은 농림10호를 미국으로 가져갔다. 미국으로 건너간 앉은뱅이밀의 키가 작은 유전자는 미국의 품종들과 교잡되어 노린10/브레베, 게인스, 뉴게인스 등이 나왔는데 이는 기존의 밀에 비해 40% 이상의 수확량 증가를 가져다 주었다. 가히 녹색혁명이라 할 만하다. 앉은뱅이밀의 피를 물려받은 품종이 연이어 탄생하였는데 보로그 박사의 소노라도 이 가운데 하나이다. 현재 미국 밀의 90% 이상이 앉은뱅이밀의 피를 물려받은 것이며 세계 밀 재배면적의 1/4이 넘는다고 한다.